네이크드 시티, 도시의 재생과 건축가
우리는 우리 도시의 진면목을 본적이 있는가? 한때 서울의 건물들의 입면은 어지러운 광고판으로 뒤 덮여 있었다. 건축물의 입면의 재료와 표정은 광고판 뒤로 숨고 정작 우리가 보는 것은 온갖 정보로 난삽하게 채워진 건축물의 가면이었다. 최근 새롭게 수립되는 경관계획들이 이러한 도시경관의 문제점을 감안하여 가이드 라인이 마련되고 시행이 되고 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도시는 건축물의 자연스러운 민낯이 드러났을 때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애써 입면 계획하고 재료를 결정하며 발코니를 열고 화분을 가져다 놓기 시작한다. 좋은 정책과 공공의 노력이 좋은 경관을 만드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도시재생’이라는 화두가 사회전반에 대두했다. 도시의 재생이라면 우리의 도시에서 한때 좋았던, 언제가 잊어버린 무엇을 다시금 되살리자는 말일 것이다. 다시 말해 재생은 없던 무엇을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닌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을 재발견하고 새롭게 가꾸는 일이다. 노후주거지를 재생한다고 할 때 누군가의 집을 헐어서 우리 마을에 없던 길을 만들고, 좁은 길을 넓히고, 있던 도시의 조직을 부수는 일이 재생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대신에 우리가 기억하는 살기 좋은 우리 마을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 속 도시의 모습을 현재의 우리의 삶에 맞게 재생하는 일이 ‘도시 재생’이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사실 이러한 막연한 의미의 해석이 이 시대의 건축가에게 무슨 의미일까? 공공의 영역에서 건축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 것이 현실이고, 존경 받는 건축가들이 많은 설계비를 받고 하이엔드 리테일 샵을 설계를 하는 것이 이상스러울 것이 없는 요즘이 아니던가? 건축가로서 공공분야보다 민간분야에 집중하게 되는 상황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건축이 순수하게 건축으로만 남아 있을 수 없고 다른 것과 접목이 된다면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기술적인 것과도 한계 없이 확장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할 제안 자체가 이미 건축가의 영역에서 벗어난 정책 입안자의 영역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면밀히 도시의 공간을 바라보게 되는 것도 건축가이기에 이 제안을 통해 사적 영역의 확대가 곧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일로 귀결이 될 수 있다면 전문가로서 충분히 의견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살기 좋았던 우리의 마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아마 여러 사람들의 멀지 않은 기억 속 동네에서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한적하고 볕 좋은 담벼락을 방 삼아 동네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던 고즈넉하고 활기 찬 모습들이 오롯하게 떠 오를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마주하는 공공의 공간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던 옛 공간의 모습들 말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당장에 문을 열고 밖에 나가면 간선도로는 불법 정차된 차들이 인도로 올라와 있고, 이면도로는 양쪽으로 주차된 차들 사이로 보행자들과 주행하는 차들이 한데 뒤섞여서 위험천만하다. 언제 어디서 사람이 튀어 나올 줄 모르고 보행로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탓에 뒤따라온 차들은 앞서 걷는 사람들을 향해 시종 경적을 울린다. 또한 사적 공간과 공공영역의 사이를 주차된 차들이 방벽처럼 가로 막는 탓에 사적 영역과 공공영역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던 수많은 네러티브들은 사라지고 대신에 대지경계에 맞춰서 새워놓은 벽들이 공공영역에 등을 돌린 체 사적 영역 만을 강화하고 있다.
도시에서의 경험은 표피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앞서 말한 도시의 경관적 발전은 건축물의 입면을 둘러싸고 있던 광고물들의 레이어가 사라진 후에야 담론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우리의 거리에서 네러티브가 사라진 것 또한 마찬가지 이다. 거리의 풍경이 풍성해 질 수 없는 이유는 어느 순간 일상적 거리에서, 보행자의 눈높이 에서의 도시가 사라진 탓이다. 주택가의 길의 양쪽으로 길게 주차된 자동차의 방벽은 보행로와 건축물 사이에 놓인 체 도시의 일상적인 경험을 방해한다. 경험적 측면에서 길과 보행이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간을 가지고 걷고 관찰할 때, 즉 경험이 일상적 습관으로 녹아들 때 감각의 영역은 비로소 촉각 청각 후각의 영역까지 확장된다. 이를 통해 보이고 보여지는 피아의 식별은 종국에 공간의 대한 지성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고 이념과 실용을 연결하는 공간의 재창조가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의 성공도 역시 네트워크로서 길 자체뿐만 아니라 보행로라는 인프라스트럭처에서 다양한 레벨로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주변의 콘텐츠가 다양하게 마련되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래서 체험이 사라진 도시의 풍경이 차가워 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198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자동차를 구입하는 마이카 시대로의 전환은 도시의 이면도로에서 사람들을 몰아냈다. 도시의 길은 도시 공동체의 공간으로서 놀이와 소통이라는 순기능을 상실했고, 결국 공공영역은 주차로 인해 점 적으로 사유된 환경으로 바뀌었다. 동네의 사랑방 같던 길의 풍경은 없어지고 사람과 물류의 이동이라는 기능적 요구만을 간신히 해내는 기계적 공간의 풍경만 남았다. 자동차의 도로 점유로 인한 공공공간의 질이 떨어지는 이러한 상황은 특히 오랜 기간 동안 인포멀하게 구성된 구 도심 공간이 널찍하게 구획된 신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살기 좋은 동네의 환경은 공공영역의 질, 즉 보행 안전의 확보와 쾌적한 주변 환경이 보장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현재의 도로 환경으로는 이 두 가지 근본적 가치의 확보가 불가능한 상태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도시를 재생시킬 방법은 당연하게도 하나의 답으로 귀결된다. “도로에서 자동차를 없애는 것이다.” 도로를 불법 점유하는 자동차를 없애고 보행로와 차도가 분리된 쾌적하고 안전한 보행 환경을 만들어서, 도시의 건축물들이 공공 영역인 보행로에 직접적으로 면하게 하여 자연스럽게 도시를 경험하는 다같이 차가 없던 시절 우리 동네의 보행 환경을 다시금 재생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있는 차를 없앨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이러한 주장은 현재의 주차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남긴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정책적 결정과 도로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 해법으로서 우리와 같이 도심 내 높은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인포멀한 거대 도시 조직을 유지해온 일본의 도로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도쿄를 보면 도시전역으로 모세혈관 같이 펼쳐진 도로 어디에도 불법 주차를 찾을 수 없다. (만약 되어 있다면 빠른 시간 안에 견인된다.) 모든 도로는 적어도 페인트로 구획되어 보행로와 주행 도로가 구분이 돼있고 구분 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길은 자동차의 진입이 금지이다. 보행도로와 면한 길가의 집들과 노점의 자투리 공간에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화분이 나와 있거나 의자들이 나와 있어서 동네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기에도 좋다. 노인들도 아이들도 안전에 대한 염려 없이 길을 걸을 수 있고 비어 있는 도로는 청소하기도 용이해서 항상 청결한 상태를 유지한다. 일본이 이러한 도시환경이 가능 했던 이유는 62년부터 성공적으로 시행된 ‘차고지 증명제’의 역할이 크다.
‘차고지 증명제도’는 개인이 자동차를 매입하거나 타인으로 양도받는 경우, 또는 이사로 자동차의 소유자의 주소지가 변경되는 경우, 자동차 소유자의 주택내부 또는 거주지로부터 일정거리에 매입한 자동차를 주차시킬 수 있는 주차장을 확보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제도로서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7년부터 제주시에서 차고지 증명제가 시행 중에 있다. 이 제도를 통해 일본은 오랜 기간 동안 도시 공간조직을 변화 시켜 왔는데, 건축물을 신축하거나 개축할 때 필요한 주차장을 필수적으로 확보하고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 도심지 곳곳에 위치해 있는 공공 주차장이나 민간에서 운영하는 주차장을 임대하는 형식으로 도심지 주차 문제를 해결해 왔다. 성공적인 제도의 안착을 통해서 보행환경의 안전성과 쾌적성의 확보는 물론, 긴급자동차의 동선 차단 피해, 주차 갈등에 따른 주민간의 분쟁 등의 사회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익자부담원칙과 원인자 부담원칙이라는 경제 원리에도 부합되는 합리적인 정책 수단이라 볼수 있다. [i]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신시가지를 제외한 구 도심 낙후지역에서 전면적으로 이 제도를 실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그래서 시간을 가지고 점진적인 제도의 안착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고 강력한 제도적 단속 정책이 원활하게 병행되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제도의 개선과 더불어 무엇보다 우선 필요한 것은 첫째로 공공주차시설의 확충, 그리고 둘째로 지구교통계획 차원에서의 이면도로 개선 사업이 필요하다.
차고지 증명제도가 실수요자에게 주차장확보의 의무를 지어주는 제도이지만, 구 도심의 경우 이미 살고 있는 단독 주택 내에 차고가 없거나, 세 들어 살고 있는 연립, 다세대 주택의 차고의 확보가 미약한 경우가 많고, 야간인 경우 주차수요가 포화상태에 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 기간에 도로에 주차돼 있는 자동차를 없애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 일본의 경우에는 민영주차장이 도심에 공급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수요와 공급간의 균형이 맞추어 졌는데 우리도 자연스럽게 민영주차장이 공급이 늘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만 저소득층이나 갑자기 주차 면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공공임대 주차장을 지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에 현재에 주민 센터나 공원 부지를 활용해서 입체 주차 시설을 만드는 방법을 제안한다. 주차장과 하이브리드 된 공원이나 주민센터, 도서관 등을 만들고 이러한 공간이 주차와 함께 일상적으로 사용되게 하여 공적 영역이 강화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시설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시행초기에 차고지 미 보유자에게 주택 인접도로에 주차 구획 선을 설치하여 주차를 허용하는 대신 도로 점용료를 징수하고 단계적으로 노상 주차 구획 면의 숫자를 줄여가는 방법도 효과적일 것이다.
이면도로의 경우는 상업 업무지구와는 떨어진 실질적 주거지역인 경우가 많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시작 지점이자 가장 친밀하게 사적 공간과 공공 공간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미 도로가 넓고 구획이 잘된 간선도로에 비해 좀더 지역 친화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구획선의 설치나 도로 페이빙 메터리얼의 변화를 통해, 보행공간, 자동차 주행 구간, 정차 공간을 탄력적으로 설정하여 이면 도로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행로와 도로 사이에 연석을 설치하여 단차를 주는 기존의 보차 분리 방법 대신에 심라인Seamline
없이 이어지도록 구획을 하여 응급 차량과 장애인의 진입이 어느 곳에서라도 용이하도록 하고 학교구간 등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해체 가능한 볼라드 등으로 구획을 하는 것도 좋을 방법일 것이다. 6 미터 이상의 도로는 양쪽에 보행구획을 하고 기본적으로 쌍방향 자동차 통행이 가능하도록 하되 지역 지구의 교통계획에 맞추어 과감하게 일방통행 시스템을 도입해서 좀 더 넓고 녹지도 있는 편안한 보행 공간을 만들 수 있다. 6 미터 미만의 도로도 자동차의 통행에 필요한 최소의 폭을 제외하고 역시 양방향 보행구획이 되어야 하겠다. 도로가 4미터 미만이면 통행에 지장이 되는 가로수 등의 식재 없이 구획선 만으로 보행로를 분리하고 도로가 더 좁아질 경우 자동차의 통행자체를 금지해야 할 것이다.
도로는 도시의 모든 조직과 닿아있는 대표적 공공의 영역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공간의 가능성을 잊은 채 하나의 용도로 그 모든 기능을 낭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만들어진 주차라는 영역은 하나의 거대한 벽으로 가로 공간을 잠식했다. 습관적 삶을 통해 표피에서 촉감과 시각 청각으로 느껴져야 할 도시의 다채로운 모습은 가로에 주차된 자동차의 벽 너머의 일이 되었고, 사람들도 더 이상 저 너머의 일에 관심을 끄기 시작했다. 도로는 오로지 목적하는 공간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고 이마저도 자동차를 통해 빠르게 오고 가는 것이 우리 내 동네의 모습이다. 건축물들도 언제 저 차가 내 영역으로 넘어오지 않을까 노심 초사하면서 그 신경질적 경계심만큼이나 높은 벽들로 자신의 공간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를 어떤 장애물 없이 이어주는 것은 중요하다고 믿는다. 몸과 마음이 만나 발개 벗은 도시의 민 낯을 보지 못했다면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감각의 영역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아마 그제서야 도시는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집 앞의 골목에 나와서 조금만 상상해 보면 충분히 좋아 질 수 있는 곳이 우리동네이다. 그 길을 장애 없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오고 갈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내 집과 맞닿은 도시의 공적 영역이 쾌적하고 안전하다면 등을 돌리고 있던 사적 영역은 당연히 다시 공적 영역을 끌어 안고 싶을 것이다. 길을 향해 마당을 열고 창을 내고, 심지어 거리를 제집의 복도로 삼고 집을 짓고 싶을 것이다. 건축가가 민간분야에 집중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공공에 이익이 되도록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 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서로 윈윈하는 선 순환이 가능하도록 하는 지역적 매니지먼트의 도입, 일관적 정책 그리고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