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축가의
역할은 건축물 자체뿐만 아니라 건축물에 대한 관념의 재현까지 확장되어 있다. 다시 말해 건축의 범위는 대상으로서의 건축물을 시공하는 것을 포함해서 시공을 위한 이미지와 기호를 만드는 일 그리고 이러한 기표들이 고도로 추상화된 의미로 이해될 수 있도록 재배열 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이것은 건축가들이 그들의 도구로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면서 더욱 명백해 졌다. 디지털 시대에서 이미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주요수단이 되었고 선험적 조건으로서 세계를 지각하고 인식하고 이해하게 하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통해 정보의 저장 전송 가공의 방법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텍스트와 경험을 통해 설명되던 것들이 기존에 가능하지 않던 방법으로 다채롭게 보여지기 시작했다. 건축가는 빛이 도달할 건축물을 만들기 이전에 이미 컴퓨터의 복잡한 연산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리얼리즘을 확보할 수 있었고 가상현실의 발전은 삼차원의 정보를 이차원으로 압착 시키는 평면적 디스플레이로부터 인간의 눈을 해방시켰다. 인간의 움직임을 매개변수로 하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가상에서 현실적 질서를 감지해 낼 수 있을 정도 기술을 구현하기에 으르자 건축가는 다 차원에서 정보를 조작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오직 만들어진 건축물을 통해 체험할 수 있던 것들은 디지털 연산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로 치환되어 보여짐으로써 건축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의 형성에 어떻게 자리 잡는지 미리 규정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건축물은 장소를 점유한다는 면에서 유일무이한 원본이다. 건축물은 장소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있고 같은 모양의 건물일지라도 놓여진 공간이 바뀌면 완전히 다른 건축물로 읽힌다. 이것은 건축물이 지속적인 가치를 가지는 아우라는 형성하고, 건축이 일상 속에 녹아 들어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로 온전히 느낄 수 없는 매체가 되게 한다. 판테온은 로마에 있는 것이고 만리장성은 꼭 중국에 있으며 도처에 건설되는 레플리카 도시들이 결코 원본이 보여주는 진실성을 대체하여 보여줄 수 없다. 허위는 아주 작은 오류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소 속의 건축물을 연속적 시간의 흐름 속 일상 안에서 인식하고 체험할 수 있는 대중은 얼마나 될까? 우선 그곳이 어디든 건축물이 있는 장소를 방문해야 하고, 방문을 하여도 건축물의 용도에 따라 들어 갈 수도 못 들어 갈 수도 있다. 그 건축물이 개인이 집이라면 직접 소유하지 않는 이상 소유주와 개인적 친분을 먼저 쌓아야 할 것이다. 건축물은 언제나 복제가 되지 않는 원본이기 때문에 아우라를 가지고 있고 그 만큼 현실 속 에서 진입장벽을 가진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건축물은 일상적 삶 속에 녹아있는 것일 뿐, 이외에 지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축물들은 아마 대부분 짧은 방문이나 사진 인터넷 속에 분산된 이미지들의 조각을 재조합 한 어떤 것이다. 이렇게 디지털 문화 속의 건축적 생산과 소비는 복제되고 반복적이면 일시적이다. 건축행위가 인과관계의 결과로서 건축물이 생산되는 선형적 구조의 것이 아니라 행위 자체가 분산적 삽화들의 데이터 베이스로서 각각의 장면은 그 자체로 동결되어 소비된다.
만들어진
건축물을 현장에서 바라볼 때와 건축물을 카메라를 통해 바라볼 때, 촬영된 이미지를 인쇄매체를 통해 볼 때, 건축물이 촬영된 영상을 컴퓨터의 스크린을 통해 볼 때, 건축물이 삼차원으로 디지털화 되어 기록이 되고 그 영상이 삼차원 영상매체를 통해 처리된 것을 볼 때 수신자는 각각 다른 감각으로 대상을 이해한다. 모든 이미지들이 하나의 의미를 가리키고 있어도 감각의 차원이 달라지면 결과물이 나타내는 정보가 각기 다른 질감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즉 원천 데이터로서 사차원에서 삼차원 이차원을 거쳐 텍스트, 그리고 삼차원으로 변환될 때 같은 차원이라도 현실에서 뽑아낸 것과 디지털로 변환 후 재조합 된 삼차원의 것은 같은 기의를 가지더라도 두 기표사이에는 불가해한 (Uncanny) 다름이 존재하는 것이다. 건축가들이 이러한 매체의 특성을 잘 이해한다면 각 차원에서의 결과물들이 각기 다른 독립적 가치를 갖도록 의도하여 만들 수 있게 된다. 건축적 생산물의 불완전 한 상태가 무엇인가 새로운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건축행위가 건축물이 세워진다는 가정하에 장소와 시간의 흐름에서 선택적으로 분리된 정보를 가져오는 프로세스를 전재로 한다면, 이제는 건축이 구축을 위해 생산되는 정보를 미디어에 맞게 재조합 하는 것 만으로 건축적 생산이 원본의 불완전한 재현이 아니라 없던 것을 실현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더욱이 실재 구축 이전에 건축물을 디자인 하기 위한 디지털 도구로 표현되는 가상의 현실이 실재와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계속 기술이 진보되고 실재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원천 데이터로서의 현실 공간의 구축 없이도 탈 공간 탈 물성의 허위가 실재적 경험이 된다. 건축 생산의 최종의 단계로 시간과 장소를 점유하는 건축의 구축 없이도 대체물로서의 건축적 생산이 가능해 진 샘이다.
유사
현실이 원천 데이터의 역할을 하는 것은 건축이 구축 이전 단계에서 이미 구축 후의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론 이것은 불완전한 가짜이고 정확하게 현실을 모사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상이 만들어 내는 대상을 향한 감각의 자료가 현실과 같이 하나의 이미지로 종합이 되도록 할 수 있다면 허위는 진실과 적어도 체험의 측면에서 같은 위상에 서게 된다. 현실인 가상이다. 더욱이 이러한 생산이 외부로 확인 가능한 측면과 객관적 측면의 상세한 묘사를 통해 대상과 일치하는 지식을 생산하는데 역점을 두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다름을 인식하고 개인의 사유의 도식을 통해 결과물에 대한 내적 추론을 가능케 하는 열린 구조를 가진다면 기존의 건축적 생산물이 현실과 관계하면서 만들어지는 실존적 한계를 뛰어 넘게 된다. 연속된 가상의 사차원의 공간을 좌표로 두고 있어도 구축의 프로세스 마다 만들어지는 건축적 생산물들은 더 이상 원본과 일치할 필요가 없어진 가상의 이미지이고 건축가의 의지만 있다면 새로운 창조적 활동을 가능케하는 로우 메터리얼이 된다.
건축가는
이제 빛으로만 가득한 무취의 공간에 몰두 한다. 그는 매우 지루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