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Manfredo Tafuri 의 Architecture and Utopia Design and Capitalist Development 의 6 번재 챕터 The Crisis of Utopia: Le Corbusier at Algiers 를 번역한 내용이다.
6. 유토피아의 위기: Algiers에서 Le Corbusier
다양성의 흡수, 플랜의 확실성으로 있을 것 같지 않음을 받아드리는 것, 상호관계를 강조해서 유기적이고 분열적인 가치를 분쇄하는 것, 정신적 생산성의 최대치와 일치하는 생산적인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일:
이것들은 르 꼬르뷔제가 유럽의 급진적 문화와 비교할 수 없이 명료하게 묘사한 목표들이다.
이런 목표를 세우면서, 르 꼬르뷔제는 건축이 싸워야 할 3 가지의 전재에 신경을 썼다. 만약, 건축이 “생산물의 조직”과 동의어라면, 생산성 자체를 넘어서, 분배와 소비도 순환의 결정적 요소라고 하는 말하는 것도 역시 사실이다. 건축은 조직하는 것이지 물체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다. 이 르 꼬르뷔제의 주장은 슬로건이 아니라 지적 기폭제와 문화의 기술자를 연결하는 의무적인 명령이다. 문화의 선봉집단의 멤버로서, 길을 정하고 플랜을 확정하면서, (비록 일부의 공간이라고 할지라도) 건축가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건축가가 직접적으로 제안 하는 것은 산업에 호소 (the appel aux industriels )와 빌딩 그 자체이다. 그의 생산 건물의 계획과 도시민의 재편성을 위한 프로그램의 도시 성 사이를 중재 할 만한 권위를 찾기 위한 연구는 CIAM과 함께 정치적 수준까지 추구 되었다. 그에게 궁극적 형태의 표현은, 대중을 활발하고 참여적인 건축 생산물의 소비자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목표를 세우면서, 르 꼬르뷔제는 건축이 싸워야 할 3 가지의 전재에 신경을 썼다. 만약, 건축이 “생산물의 조직”과 동의어라면, 생산성 자체를 넘어서, 분배와 소비도 순환의 결정적 요소라고 하는 말하는 것도 역시 사실이다. 건축은 조직하는 것이지 물체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다. 이 르 꼬르뷔제의 주장은 슬로건이 아니라 지적 기폭제와 문화의 기술자를 연결하는 의무적인 명령이다. 문화의 선봉집단의 멤버로서, 길을 정하고 플랜을 확정하면서, (비록 일부의 공간이라고 할지라도) 건축가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건축가가 직접적으로 제안 하는 것은 산업에 호소 (the appel aux industriels )와 빌딩 그 자체이다. 그의 생산 건물의 계획과 도시민의 재편성을 위한 프로그램의 도시 성 사이를 중재 할 만한 권위를 찾기 위한 연구는 CIAM과 함께 정치적 수준까지 추구 되었다. 그에게 궁극적 형태의 표현은, 대중을 활발하고 참여적인 건축 생산물의 소비자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좀더 정확히,
형태는, 기술적으로 정확한 세상 속의 부자연스러움을 진짜 같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일을 맡고 있다. 그 세상은 자연을 지속적 변화의 프로세스 속에 완전히 예속시키고 있기 때문에, 르 꼬르뷔제에 있어서,
형태는 빌딩 생산 주기의 재 편성을 주장하는 주제로서,
완전한 인류학적 풍경이었다. 하지만 르 꼬르뷔제는, 금융 자본가,
계약자의 사익,
그리고 부동산 같은 금융 투자 방법의 철 지난 메커니즘의 저항이 만들어낸 신중함이 개발과 “인간”
증가의 총량을 막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1919년과 1929년 사이에 르 꼬르뷔제는 Domino house, the Immeuble-Villa, 300백만을 위한도시,
그리고The Plan Voisin for Paris 같은 원형을 설정하고 연구했다. 이 참을성 있는 연구는 다양한 종류의 개발의 스케일을 좀더 분명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실험실 시험의 역할이 제안하는 부분적인 현실화 과정에서, 그는 일반적인 가정을 실험했고, 도시의 문제가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정확한 범위를 직감하면서,
독일의 “합리주의”
모델을 넘어 섰다.
1929년과 1931년 사이에는 몬테비데오, 부에노스 아이레스,
상 파울로 플랜과 마침내 알제리를 위한 Obus 플랜을 통해,
르 꼬르뷔제는 모던 도시의 가장 고상한 이론적 가설을 표현해 냈다. 사실, 이것은 이념과 형태의 관점에서 보아도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Taut, May 나 Gropius와는 반대로,
르 꼬르뷔제는 건축 – 구역 – 도시로 이어지는 시퀀스를 부셔버렸다.
도시 구조는,
그것 자체가 물리적 기능적 조화를 이루는 것만큼이나, 가치척도의 보고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구조의 중요성이 전체의 풍경 안에서, 완벽한 배경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성명서였다.
알제리의 오래된 카스바(
Casbah), Fort-l’em-pereur의 언덕,
해안선의 깎긴 자리는, 거대 스케일의 레디 메이드 오브젝트 그리고 다시 이용될 재료로서 쓰였다. 원래 이것들이 가진 중요성을 전복하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새로운 구조는 예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통일성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최대한의 영향력의 주고받음은 최대한의 자유와 유연성에 부합해야만 했다. 모든 과정의 경제적 전제는 그래서 명확해야 한다. Obus 플랜은, 무정부의적 구식 자본주의를 극복함으로써, 지역의 축척이 모든 도시 땅의 전면적이고 유기적 재 편성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은,
새로운 지역 법령이 거의 필요로 하지 않게 하였다.
그래서 도시 시스템은 여기서 적절한 언어가 된다. 이런 경우에 지형의 완전한 적용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다. 사실 산업적 대상은 도시 공간에서 어느 하나의 공간을 상정하지 않는다. 여기서 연속적 생산은 기본적으로 어떠한 공간적 위계도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기술의 세계는 여기저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작동하는 자연적인 장소는, 입체주의 미래주의 그리고 요소주의가 이해되는 순수한 위상적 공간인,
인류 환경 전체이다. 그러므로, 도시의 재구성에 있어서,
장소는 사용가능 한 완전한 3차원 적인 공간이다.
도시의 개념은 생산과 소비의 두 가지 순환과 개선의 두 가지 스케일의 대조를 포함한다. 전면적인 도시공간과 자연환경의 재구성은 완전한 도시 기계 구조의 합리화를 필요로 한다. 이 스케일에서 기술적 구조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은 하나의 이미지를 구성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것들은 도로 망(도시 노동자의 집이 있는 구불구불한 지역으로 오르는 고속도로)의 다양한 높이와 독특한 특성들 에 의해 펼쳐진 인공적 지형이 상징적인 가치를 얻어낸다는 반 자연주의를 보여준다. Fort-l’em-pereur의 주거 블록의 자유로운 형태는 초현실적 아방가르드의 전형적인 가치를 가진다. 선형적인 빌딩 – Villa Savoye의 인테리어나, 상제리제의 Bestegui attic 의 아이러닉한 집합체 같은 – 은 추상을 모방하고 “모순의 춤”을 우상화 하는 거대한 물체였다.
또한, 도시 오브젝트의 스케일에 있어서, 이제 결국 유기적 전체로 결의된 것 에서 나온 것은 모순의 긍정적 특성, 비 이성과 이성의 화해, 그리고 폭력적 긴장감의 영웅적 구성이었다. 이미지 구조의 도움으로, 그리고 이 역할로 만, 필요의 통치기간은 자유에 용해되었다. 전자는 엄격하게 조정된 플랜의 추정을 통해 설명되고, 후자는 좀더 높은 인간 의식의 회복을 통해 설명이 된다.
심지어 르 꼬르뷔제 도 충격 요법을 사용했지만, 개체 시적 반응 (objets a reaction poetique)은 이제 유기적 호혜로서 연결되고, 형태와 기능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경험 할 수 밖에 없다. 르 꼬르뷔제의 Algier는, 그것이 읽히고 사용되는 어떠한 수준에서도, 대중에 대한 전면적 개입을 도입한다. 하지만, 대중이 영향을 받는 곳에 참가하는 것은 중대하고, 사색적이며, 지적인 것이라는 점은 언급되어야 한다. 도시 이미지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읽기”는 오컬트적인 인상을 낳는다. 그래서 르 꼬르뷔제가 필요한 간접적 자극 같은 부차적 영향에 기대했다는 점을 제외시키면 안 된다.
도시의 개념은 생산과 소비의 두 가지 순환과 개선의 두 가지 스케일의 대조를 포함한다. 전면적인 도시공간과 자연환경의 재구성은 완전한 도시 기계 구조의 합리화를 필요로 한다. 이 스케일에서 기술적 구조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은 하나의 이미지를 구성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것들은 도로 망(도시 노동자의 집이 있는 구불구불한 지역으로 오르는 고속도로)의 다양한 높이와 독특한 특성들 에 의해 펼쳐진 인공적 지형이 상징적인 가치를 얻어낸다는 반 자연주의를 보여준다. Fort-l’em-pereur의 주거 블록의 자유로운 형태는 초현실적 아방가르드의 전형적인 가치를 가진다. 선형적인 빌딩 – Villa Savoye의 인테리어나, 상제리제의 Bestegui attic 의 아이러닉한 집합체 같은 – 은 추상을 모방하고 “모순의 춤”을 우상화 하는 거대한 물체였다.
또한, 도시 오브젝트의 스케일에 있어서, 이제 결국 유기적 전체로 결의된 것 에서 나온 것은 모순의 긍정적 특성, 비 이성과 이성의 화해, 그리고 폭력적 긴장감의 영웅적 구성이었다. 이미지 구조의 도움으로, 그리고 이 역할로 만, 필요의 통치기간은 자유에 용해되었다. 전자는 엄격하게 조정된 플랜의 추정을 통해 설명되고, 후자는 좀더 높은 인간 의식의 회복을 통해 설명이 된다.
심지어 르 꼬르뷔제 도 충격 요법을 사용했지만, 개체 시적 반응 (objets a reaction poetique)은 이제 유기적 호혜로서 연결되고, 형태와 기능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경험 할 수 밖에 없다. 르 꼬르뷔제의 Algier는, 그것이 읽히고 사용되는 어떠한 수준에서도, 대중에 대한 전면적 개입을 도입한다. 하지만, 대중이 영향을 받는 곳에 참가하는 것은 중대하고, 사색적이며, 지적인 것이라는 점은 언급되어야 한다. 도시 이미지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읽기”는 오컬트적인 인상을 낳는다. 그래서 르 꼬르뷔제가 필요한 간접적 자극 같은 부차적 영향에 기대했다는 점을 제외시키면 안 된다.
“원인을 채득해서 괴로움을 피하라." 하지만, 르 꼬르뷔제의 제안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거주의 최소 단위 같은 생산의 최저 단위 수준에서,
직면한 문제는 최대한의 유연성, 상호 교환 성,
그리고 빠른 소비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타 지위에 놓인 인공 잔디 위에 건설된 거대 구조물의 네트워크 안에서,
이미 사용된 주거 요소의 삽입은 최대한의 자유를 허락한다.
대중에게 이것은 도시 디자인의 활발한 참여자가 되라는 초대였다.
이 비상하게 대단한 드로잉에서 르 꼬르뷔제는 기이하고도 다방면에 걸친 요소를 고정된 구조의 네트워크에 삽일 할 가능성을 보여 줬다. 대중에 열린 자유는 그 악취미를 표현하기 위해서, 바다를 따라서 구불거리며 건물에 사는 무산노동계급과
Fort-l’em-pereur 의 언덕에 거주하는 중산층 계급으로 일컬어지는,
대중을 허용하는 지점까지 밀어 부쳐져야 한다. 건축은, 그래서, 교육학적 행위이자 집단적 통합의 방법이다.
그러나 산업과 관련하여, 이 자유는 좀더 큰 중요성을 상정한다. 르 꼬르뷔제는, May가 frankfurter Kuche에서 그랬듯이, 일반적 기능 요소에 대한, 생산의 최소단위를 확고히 하지 않았다. 단일 오브젝트의 스케일에서 계좌는, 확장하는 역동적 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지속적 기술 혁명, 스타일 링, 그리고 대량 소비의 긴급사태로 가득 차게 된다. 이론적으로 단 시간에 소비되는 주거 공간은, 생산에 지배되는 모델의 갱신과 주거 기준에 의해 주도 되는 변화, 즉 개인적 필요성의 변화에 의해 대신 될 수 있다.
그러나 산업과 관련하여, 이 자유는 좀더 큰 중요성을 상정한다. 르 꼬르뷔제는, May가 frankfurter Kuche에서 그랬듯이, 일반적 기능 요소에 대한, 생산의 최소단위를 확고히 하지 않았다. 단일 오브젝트의 스케일에서 계좌는, 확장하는 역동적 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지속적 기술 혁명, 스타일 링, 그리고 대량 소비의 긴급사태로 가득 차게 된다. 이론적으로 단 시간에 소비되는 주거 공간은, 생산에 지배되는 모델의 갱신과 주거 기준에 의해 주도 되는 변화, 즉 개인적 필요성의 변화에 의해 대신 될 수 있다.
플랜의 중요성은 그래서 매우 확실해 진다.
도시 재정비의 주제는 창조행위의 참여자로 비판적으로 만들어지고 간청 받은 대중이다. 지속적 변화와 개발의 충동적이고 칭송 받는 과정에서, 산업의 선봉,
당국 자들,
그리고 도시의 사용자는 이론적으로 비슷한 기능 안에 포함된다.
생산의 현실성 에서부터 이미지와 이미지의 사용까지, 전체 도시기계는 기계 문명의 사회적 잠재력을 그것의 가능성의 극단까지 밀어 부친다.
우리는 이제 이 분명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왜 르 꼬르뷔제는 Algier를 설계했고 또한 왜 유럽과 미국 도시들 그리고 그의 더 작은 제안을 위한 플랜들이 사문으로 남아 있을까? 우리는 그 제안들이, 심지어 현재까지도 가장 급진적이고 형태적으로도 건축과 도시 디자인의 분야에서서 부르주아 문화의 고상한 가설을 구성한다고 이미 이야기했다. 이 선언 자체가 르 꼬르뷔제가 격은 실패에 의해 부정되지 않을까?
우리는 이제 이 분명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왜 르 꼬르뷔제는 Algier를 설계했고 또한 왜 유럽과 미국 도시들 그리고 그의 더 작은 제안을 위한 플랜들이 사문으로 남아 있을까? 우리는 그 제안들이, 심지어 현재까지도 가장 급진적이고 형태적으로도 건축과 도시 디자인의 분야에서서 부르주아 문화의 고상한 가설을 구성한다고 이미 이야기했다. 이 선언 자체가 르 꼬르뷔제가 격은 실패에 의해 부정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정당하고 추천 할만한, 많은 답이 있다. 무엇보다 우선,
르 꼬르뷔제가 용어의 정확한 의미로서 “지식인” 으로 일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의 작업은
Taut 나 May 혹은 Wagner처럼 지역 건축가와 지역 정부와 결부 되지 않았다.
그의 가설은 특정한 현실 (확실히, Algiers에서, 지형의 특정한 대형이나 역사적 계층화는 예외적이고 반복대지 않을 것으로 고려한 플랜의 형태였다.)에서 시작 되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가장 넓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특정한 것 에서 부 터 보편적인 것에 걸쳐서, 그의 방법의 정확히 반대에 위치하는 방법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지식인에 의해 뒤를 있게 된다. 르 꼬르뷔제가 공식적인 약속이나 설계 경기를 통하지 않았는데도
Algier 를 위해 4년간 일했다는 점은 중요하다. 그 스스로 커미션을 만들었고, 이를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활동적이고 창조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프로젝트에 배치했다.
이 사실은 그의 모델에 실험적 프로젝트의 성격을 준다. 그리고 실험적 프로젝트가 현실에 바로 적용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그의 가설의 보편적 적용가능성은 가설이 자극하려 했던 퇴보하는 구조와 충돌한다. 목표는, 여전히 일관성 있고 유기적 형태를 가정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경제와 산업의 현실의 가장 발전된 과제와 일치 시키며,
건축을 혁신 시키는 일 이었기 때문에, 르 꼬르뷔제의 리얼리즘이 유토피아적인 이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반면에, Algiers의 실패,
그리고 르 꼬르뷔제의 전반적 실패는,
그의 건축이 모던 건축의 세계적 위기의 현상과 관련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세상”의 사상적인 위기에 관련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떻게 이 시대의 역사적 연구가, 1930년경에 시작해서 현재의 우리의 세대까지 강조되어온 것으로 여겨지는, 모던 건축의 위기를 설명하려 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이 위기에 대한 거의 모든 비난은 한쪽으로 유러피안 파시즘의 대두 그리고 다른 한쪽으로 스탈린 주의 같은 정치적 후퇴에 기인에 쏠렸다.
하지만, 자본의 국제적 재 정립, 반 주기적 계획 시스템의 확인,
그리고 소련
5 주년 계획의 현실화 같은 결정적 새로운 주인공 외형은,
1929년 대공황 직후, 조직적으로 무시되었다.
케인즈의 일반이론에 의한 경제 분야에 형성된 목표들이 모던 건축의 순수한 이념으로 발견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미래를 현재처럼 바꿔서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탈출하라.”(Negri): 케인즈적 개입론 원리는 모던 아트의 그것과 같다. 그리고 정확하게 정치적 의미에서, 이는 르 꼬르뷔제의 도시 이론의 개념에 닿아 있다. 케인즈는 “ 일단의 재앙”을 무신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겼고, 그 위협을 항상 새로운 수위로 받아드리면서 통제를 하려고 하였다. 르 꼬르뷔제는 모던 도시의 계급의 현실을 고려하여, 도시 개발의 메커니즘 속 오퍼레이터와 활발한 소비자이자 소개되고, 이제는 조직적으로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대중의 통합을 위해,
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향상된 제안을 하면서, 계급의 갈등을 좀더 높은 레벨로 바꿨다.
그러므로 최초 우리의 가설은 사실로 확인된다. 유토피아의 수위가 대체됨에 따라 플랜이 가용 가능한 메커니즘으로 변할 때, 이상적 플랜으로 서의 건축은, 계획의 현실에 의해 일소된다.
모던 건축의 위기는 모던 건축의 거대 산업 자본 같은 자연적 수탁자가, 거대 구조를 제쳐놓으면서 기본적인 이상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 지점에서 건축적 이상은 어떤 목표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가설의 현실화를 보는 것에 대한 완강한 저항은 철 지난 현실성을 초월하는 일이나 성가긴 장애가 될 뿐이었다.
그것은 1935년경에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는 모던 운동의 복잡성이나 번민 속의 논란으로 이해하는 깨달음 이었다. 도시와 지역의 합리화를 위한 일반적 청원은,
때때로 부분적 목표와 경쟁하는 합리화를 위한 간접적 자극제로서의 역할을 지속하면서, 대답 없이 남겨져 있다.
이것은 첫눈에 설명할 길 없을 것 같은 무엇인가가 일어난 지점이 였다. 형태의 이상은 현실적 외관에 대한 전념하는 것과, 부르주아 문화의 변증법에 내재한 대안적 위치에 의지하는 길을 포기했다. “ 유토피아 디자인”을 포기하지 않고, 이상의 수위까지 단단하게 싸여 올려진 절차는 혼돈, 영원히 사려져 버린 구조주의의 번민적 사색, 그리고 무질서적 승화에 의해 전복되었다.
이것은 첫눈에 설명할 길 없을 것 같은 무엇인가가 일어난 지점이 였다. 형태의 이상은 현실적 외관에 대한 전념하는 것과, 부르주아 문화의 변증법에 내재한 대안적 위치에 의지하는 길을 포기했다. “ 유토피아 디자인”을 포기하지 않고, 이상의 수위까지 단단하게 싸여 올려진 절차는 혼돈, 영원히 사려져 버린 구조주의의 번민적 사색, 그리고 무질서적 승화에 의해 전복되었다.
거역할 수 없는 교착상태에서, 건축적 이상은 생산적 도시와 구조물에 관한 추진적 역할을 선언하고, 새로 발견된 교유적 자율성이나 자기 파멸의 신경증적 태도의 뒤에 숨는다.
디자인 위기의 실제 원일을 분석할 수 없다는, 현재의 비판론은 디자인 자체가 가지는 내적 문제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그것은 시각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기술적 유토피아 사이의 새로운 연합적 실체를 제공하려 하는 징후적이고 이상적인 조정안을 편집한다. 이런 연합은,유토피아와 개발 사이의 중재자로서 연합의 역할을 신비화하는데 나타나는 통곡할만한 단점을 가진,
1929년의 새로운 객관성(Neue Sachlichkeit)과 대구 하는 의미로서 “신인류”
같은 모호한 언어로 현재 상정된다는 점은 기억할 만하다.
그리고 이런 연합을 부활시키는 것을 주장하는 영역이 꼭 집어서 도시의 이미지라는 점은 절대로 의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도시는 상위 구조와 관련하여 고려된다. 예술은 이제 도시에 상위 구조 같은 겉모습을 주기 위해 불려 진다. 팦 아트, 옵 아트, 도시적 이미지의 생성성 그리고 투시도적인 미학은 이런 목표를 위해 합쳐진다. 현대 도시의 모순점은, 스스로 위장시키고 있는 형태적 복잡성을 조형적으로 승격시킴으로써 그리고 다층적 이미지에 속으로 분해된다.
정절한 판단의 준거에 의거하여 읽는다면,
이런 형태적 복잡성은 선진 자본의 플랜에서 뛰쳐나온 돌이킬 수 없는 불협화음에 지나지 않는다. 아트 개념의 회복은 그래서, 이러한 새로운 은폐의 역할을 한다.
산업 디자인이 산업적 생산에서 선두적 위치를 차지하고, 또한, 소비, 팝 아트, 잔여물의 재활용, 그리고 그 생산에서 버려진 것들이 증가한다는 시각에서 디자인의 질을 결정함에도, 후위에 그 위치를 점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 시각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이중적 요구 대한 정확한 반응이다.
생산 순화의 최 전방에 서지 않는 아트는, 실제로, 영원 하려고 하는 소비의 과정을 수행한다. 뒷 문을 통해서 이었다면, 실제 불량품 마저,
쓸모 없음이나 새로운 사용의 가치를 내포하는 허무주의 물건으로 추앙을 받으며, 다시 생산과 소비의 순화 속에 들어섰을 것이다. 일부로 자신을 후방에 위치시키는 이런 종류의 아트는, 도시의 모순이라는 언어가 되어, 도시를 오래된 특성의 쓸모 없는 낭비나 일반화된 고장이 없는 완전한 유기적 기계로 탈바꿈 시키면서,
그 안에 완전하게 흡수되어 버리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절에서는,
전형적 현대 도시에서, 모순, 불균형, 그리고 혼돈은 피 할 수 없는것임을 대중에게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이런 혼돈이 예상치 못한 가득함,
끝없이 유용한 가능성, 그리고 현대 도시를 위한 새로운 집착거리를 만들어내는 “놀이”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대중은 확신해야 한다.
새로운 도시적 이상향에 대한 제안은 아마 다음과 같이 서술할 수 있을 것 같다: 건축적 그리고 초 기술적 유토피아 주의; 다중을 참여시키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놀이의 재 발견; 사회적 미학에 대한 예언; 그리고 “상상력 대회” 협회로의 초대.
예시적 방법으로서, 가동하는 역할 대신 새로운 설득력을 가지려는 것으로 이해하기 위해 예술적 행위에 가해진 모든 소청들을 통합하는 텍스트가 존재한다.
현재까지 추구된 목적들의 고갈에 대한 쉽지 않은 인지를 통해 나타나는 모든 아이디어를 분명히 제시하자,
라고 해석될
Pierre REstany의 “Livre
blanc de l’art total.”은 의미가 있다.
다른 언어로서 그 결과, 예술의 구원을 위한 새로운 제안은, 확실함이나 예전의 운동들이 과시 할만 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신념 조차도 없는, 역사적 급진 운동의 제의 같은 함축적 의미를 내포한다. Restiny 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언어의 변형은 사회의 구조적 변형의 결과일 뿐이다. 예술( 새로운 언어의 통합)과 자연( 현대적, 기술적, 도시적 현실)의 분리를 항상 더 줄이 것에 대한 기술은 필요 충분의 촉매로서의 확고한 역할을 한다.
기술이 열고 있는 거대한 가능성과 제안 없는 범위를 넘어서서, 기술은 변화의 시점에서 필요한 유연성의 목격자 가 된다. 이것은 의식 있는 작가가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의 형태적 효과에 매달리지 않고, 말 그대로 인간의 상상력에 작용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현대의 기술은 실제로, 현실화나 생산의 문제 같은 규범적인 족쇄를 벗어나서, 창의적 상상력이 우주적 양심과 같은 뜻이 될 만큼 상상력이 모든 것을 지배 할 수 있게 한다. 곧 있을 미학은 인간의 집단적 해방과 같은 인류의 거대한 희망의 자동차 된다. 예술의 사회화는, 기술적 변의 같은, 활발한 통합의 목표를 지향하는 창의적 힘과 생산의 수렴을 지향한다. 이것은 인류와 현실이 진짜 자연스럽고 과거를 청산하는 그들의 진짜 얼굴을 찾는, 재구성을 통해 가능해 진다.
기술이 열고 있는 거대한 가능성과 제안 없는 범위를 넘어서서, 기술은 변화의 시점에서 필요한 유연성의 목격자 가 된다. 이것은 의식 있는 작가가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의 형태적 효과에 매달리지 않고, 말 그대로 인간의 상상력에 작용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현대의 기술은 실제로, 현실화나 생산의 문제 같은 규범적인 족쇄를 벗어나서, 창의적 상상력이 우주적 양심과 같은 뜻이 될 만큼 상상력이 모든 것을 지배 할 수 있게 한다. 곧 있을 미학은 인간의 집단적 해방과 같은 인류의 거대한 희망의 자동차 된다. 예술의 사회화는, 기술적 변의 같은, 활발한 통합의 목표를 지향하는 창의적 힘과 생산의 수렴을 지향한다. 이것은 인류와 현실이 진짜 자연스럽고 과거를 청산하는 그들의 진짜 얼굴을 찾는, 재구성을 통해 가능해 진다.
순환은 닫힌다. marcusian 신화는 생산의 현재 관계 안에서 대두됨을 통해서만 “집단적 해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받아 드린다.
예술을 사회하는 것 그리고 기 기술 진보의 선봉에서 놓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 만약 현대 예술의 모든 과정이 확실하게 그런 과제에 대한 유토피아 주의 보여주는 것이라면 조금 문제가 된다. 그래서 심지어, May 가 1968 년 프랑스에서 시위 중에 사용한 애매모호한 구호를 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L’imagination au pouvoir”는, 저항와 보존, 상징적 은유와 생산적인 과정, 현실정치와 모면 사이 합의를 허가한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중재자로서의 예술의 역할을 재 확인하는 함으로서, 예술은 “계몽”의 과정으로 간주되는 자연주의적 함축을 명하는 만큼 나아간다.
그러므로 아방가르드 비판주의는 그것의 목표를 드러낸다. 예술을 위해 전도하는, 도구로서 모든 단단한 분석의 결과를 대체하는, 혼돈과 애매함은 현재 도시 구조의 애매함과 위기로 승화된 은유법이다. Restany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중요한 방법은, 도시 복지를 위한 집단적 공간 속 개인적 환경의 삽입,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본 환경적 공간의 구성, 게임과 볼거리 개념의 심리적인 조직화, 운용상 통합적 실험의 영역 안에서 연구와 기술적 협업의 체계화, 창조와 생산의 두 가지 상호보안적인 질서 사이의 기본적인 구분, 개인적 작업과 복수의 생산의 대체와 같은 미학의 일반적 적용에 공헌해야 한다.
이렇게 작업을 검사하고 판단하기를 소원하는 것은 미래학과 일치하여 현실화 하고, 오직 해방을 선택 해야 함을 호소한다. 그들은 미국 히피 공동체의 유목민적 마을이나( 여기서 해방과 기술은, 벅민스터 플러의 구조를 이용한 일시적 주거,로 함께 온다), 14회 밀라노 트리엔날레 에서 보여준 환경디자인, 혹은 Sottsass, 주니어의 에로틱한 노출주의, 아니면 1972년 뉴욕 현대 미술관이 주최한 “Italy: The New Domestic Landscape.” 전시회를 위해 만들어진, 실내와 음성의 디자인으로 고려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저항의 지하 디자인의 확산을 목도하고 있다. Warhol이나 Pascali의영화와는 다르게, 이것은, 국제적 기관에 의해 전파되면서, 제도화 되었고 엘리트 순환 속에 받아드려 졌다. 산업디자인과 미시 환경의 창조를 통해
, 카타르시스의 아이러니로 숭상화 되고 종속되는,
메트로폴리탄 구조의 폭발적인 모순은 개인적 영역으로 들어간다. Archizoom의 가장 똑똑한 게임이나 Gaetano Pesce의 불모의 번민은 ( 그 반대를 겨냥한 언어적 선언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의 개인적 사용을 통한 자기 해방을 제안한다. 그래서 아직도 위협적인
Oldernburg 나 Fahlstrom의 심볼은 평화로운 “자국의 풍경”
안에서 사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많이 기술적이든지 아니든지,
그런 개임에 디자인의 많은 공간이 주어진다는 사실은, 빌딩의 생애와 “물체”을 생산하는 산업 사이에 존재하는 분열에 기인한다. 그리고 누군가,
이런 이미지의 홍수에서 우리는, 자동화의 기술에 의해 이미 지적되고, 생산을 컨트롤하는 거대한 변화의 서곡을 목도하고 있지 않다고, 그리고 빌딩 생활의 기술적 재구성이 필연적 이라고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심지어 순수하게 이상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무익함은, James Rosenquist 같은 화가에서 온 구성적 행위 안에 억압된 상황에 좀더 감성적인 대답을 찾는 음성적인 디자인에서 촉발된 “자기의 비-소원화”에 호소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의 패널
F111을 전시 했을 때, Partisan Review에 발간된 인터뷰를 통해 Rosenquist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원래, 그림은 팔려나간, 완성되지 않은, 비전의 조각 같은 생각이었다. 그림에는 51개의 패널이 있다. 벽에 걸린 그림 중 하나를 통해, 당신은, 그것이 완성되지 않았고 그러므로 낭만적이기 때문에, 어떤 향수의 감정을 느낀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동 시대나 역사적 레코드 판을 찾듯이, 사람들이 찾고 있는 아이디어와 관계가 있다. 옛날에는 화려한 코니스나 적어도 보기에 좀더 인간적이었을 터이지만 현재 적어도 근 미래에는 그저 비어있는 알루미늄 패널이 되어 버렸을, 6번가52번 스트리트에 있는 빌딩의 건축적 조각처럼, 그 사람은 수집할 수 있다.
예전6번가를 따른 교통의 오르내림을 보았을 때, 말들은 교통 수단이 되고, 거리의 속도에 맞춘 근육의 움직임 같은 맥동이 있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보는 것은, 정적인 움직임의 번쩍임, 그 희미한 불빛이고, 알루미늄 패널과 같은 그림의 조각처럼, 예술이 되려 한 아이디어 이다.
“ 정적인 움직임의 반짝임”: Rosenquist 의 F111는 아마, 몬드리안의 “Broadway
Boogie-Woogie” 이후로 만들어진 모든 현대 미술품 중에 “사인의 치명적 침묵”
에 대한 대도시적 경험의 가장 일관성 있는 축소판 중 하나이다. 하지만 심지어 필라델피아의 Penn Center, 뉴 헤이븐에 있는 Kevin Roche 의 빌딩,
아니면 Yamasaki 의 세계 무역 센터 빌딩, 그리고 맨하탄의 Roth 는 단지 “ 정적인 공허의 순식간에 지나가는 섬광” 일 뿐이다.
그리고, 굳이 그것들을 특징 짓는 형태적 공허함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조각들은 현대 거대 도시 안으로 상정된다. 이런 작업들도, Rosenquist 의 은유를 따르면,
환상에서 깨어난 수집가들을 위한 텅 빈 알루미늄 패널들 말고는 스스로 허용할 수 없는 조각일 따름이었다.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정말, 그런 의도된 형태적 고요함과 Rudolph 나 Lundy(특히 보스턴 개발 센터와 뉴욕
5번가의 Lundy의 신발가게를 떠올려 보자)의 간절한
(하지만 공간적인)
형태적 왜곡 사이에 - 고려의 범위 안에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는지 궁금해한다.
거대 도시 공간을 지속하기 위해서, 건축은 스스로의 유령이 되기로 돼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마치 그것만이 원죄를 속죄하는 방법인 인양 했지만, 그것은 도시의 주요 구조를, 오로지 자기만 교육적 방법을 통해서, 특정 형태로 만들기 위한 자기들만의 주장과 다름이 아니었다. 확실히, 이런 현상이 가장 눈에 띄는 미국에서, 살아있는 건축물의 박물관 같은 대학교 도시가, 맨하탄 이나 디트로이트에서 쫓겨난 형태적 실험들을 수집한다는 점은 두드러지는 사실이다. 모던 건축의 앙팡 테리블, mies Van der Rohe 가 예언한 필연적 생산물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그것의 반 존재론적 특성에 따르면, 뉴욕의 시그램 빌딩이나 시카고 페더널 빌딩은 “스스로의 죽음을 통해 존재하는”, 이런 방법을 통해서만 특정한 실패로부터 구재될 수 있는 오브젝트이다.
동시에 미스의 침묵은 새로운 아방가르드의 소음과 비교해서 오래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역사적 아방가르드 운동을 제안들을 떠 올려 보았을 때 새로운 아방가르드가 정말 새로운 것을 가져다 줄까? 학자적 분석을 통해,
갱신된 사상적 관습은 차져하더라도, 고귀함의 한도는 매우 좁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실, 상상력에 동반된 위대한 거부를 통한 미래 영역을 회복하는 마르쿠스적 유토피아를 한쪽으로 치워놓고,
역사적 아방가르드 운동의 일관성에 반대하여도,
여전히 무엇인가가 아쉽다.
생산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형태적 표현의 항상 더 대단한 통합의 필요성에 비추어, 사실, 어떻게 우리는 과도한 형태 그리고 예술의 특정영역의 회복에 관한,
이 모든 주장을 설명할 수 있는가? 이것은 확실히 이런 질문에 대한 가장 빈번한 대답이,
기호학의 분야와 언어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 대한 연구를 하게하는 예시를 만들어낸다는 다소의 중요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건축적 언어를 위한 새로운 토대에 관한 연구는 이미 쌓아 올려진 문제를 다시 쌓아 올리기 위한 실체적 지역을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