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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ly 27, 2013

Space of Redundancy

0.

거함의 시대, 거함거포주의는 모든 해군의 전투가 함대 함으로 이루어지던 시절 물량으로 상대를 압도하기 위해 많은 함포와 장갑을 가진 전함을 건조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막이 열린다. 많은 화력은 강력한 공격력을 의미하고 많은 장갑은 강한 방어력을 의미하기에 배는 많은 포와 장갑을 가지기 위해 점점 비대해지고 무거워졌다. 갑판 위를 가득 매운 함포들이 일제히 적을 향해 포문을 열면 비처럼 쏟아지는 포탄에 적은 순식간에 공포를 목도했다. 하지만 거함의 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원거리 레이다를 이용한 전투항공기의 운용으로 해군력이 군함 간의 포격 한번 없이 괴멸되고 퇴각되는 해전의 시대가 시작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941 영국의 프린스 오브 웨일즈가 일본항공대의 급습으로 말라야에서 침몰했을 거함의 시대는 사실상 종말을 했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도 프랑스 앞바다에서 수장됐고, 일본군의 야마토도 미군의 전투기의 집중포화로 포문 한번 열지 못하고 침몰했다. 오직 뒤늦게 취역한 아이오와 전함 잠잠해진 태평양을 노인네처럼 어슬렁 거리다 퇴역을 했다. 발달한 레이더 기술을 바탕으로, 사정거리와 정확도를 확보한 현대의 해전의 관점에서 보면 공격의 부정확함을 물량으로 극복하던 거함의 시대는 아득히 옛날의 향수와도 같다. 잉여적 공격력은 그것이 바다 위의 강철섬을 만들지언정 상대에겐 거대한 상징적 공포였고 아군에겐 든든한 안정감이자 거대기계가 만들어 내는 스팀펑크적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거대전함을 보면 마음을 빼앗긴다. 이유는 효율성의 관점도 아니고 현대의 미끈한 아름다움도 아니다. 그것은 초과한 것들이 주는 매력이고 목적을 위해 극단으로 치달은 지난 기술의 회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은 종종 다른 기술을 역사의 유물로 만들지만 그것이 지난 기술의 종말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여러 가지 이유로 취사 선택된 기술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을 뿐이고 기술은 발전한다는 변증법적 대전제 안에서 선택되지 못한 기술들은 잉여라는 말로 대치되었을 뿐이다. 나는 글에서 건축에 있어서 잉여(Redundancy) 대치된 기술(art)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기술의 발달로 용도 폐기 되었지만 컨템포러리한 세계에서 살아난 잉여적 기술이 갖는 가능성과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합리주의 깃발 아래서는 절대 가지 않았을 선택을 하는 일이기도 하다.

1.

 초과한 것들은 언제나?” 라는 질문을 받는다. “?” “ 그렇게 했어?” 수백 년에 걸친 합리주의와 효율주의에 경도된 관념 안에서 대체 가능한 좋은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기술을 쓰는 것은 이해 받지 못할 일이고 심지어 부도덕하며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다. 오래된 기술을 쓰는 것은 (물론 오래 전에 사용한 것이라면 애당초 문제도 없겠지만) 시간과 공간을 허비하는 일이고 제한된 자원을 낭비하는 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궁에 앞서?” 라는 질문은 종종 잉여들의 존재 이유에 물음표를 던지는 대신 새롭게 존재의 가치를 정립하고 예상치 못한 가능성과 의미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더군다나 창작자(건축가)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은 새로운 건축적 프로토콜을 쓰는 기회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2.

 건축에 있어서 잉여가 발생하는 가장 원인은 축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구조의 사용에 있다. 재료의 발달과 더불어, 고대에서부터 근대에 걸쳐 이루어진 건축기술의 발달을, 동굴의 돌무더기였던 구조가 점점 간소화 경랑화 됨에 따라 내부 공간이 점점 확장되고 결국 투명해지는 과정으로 요약 해서본다면, 과정에서 시대정신에 역행하거나 당시 기술로는 최선이지만 시점에서는 보았을 쓸데없이 했던 모든 구조가 잉여로 구분이 것이다. 예를 들어 고대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는 산과 맞먹는 크기에 불구하고 좁고 통로와 내실로 이루어진 단출한 공간만이 내부에 존재 뿐이고, Temple of Amon-ra 같은 고대신전은 내부에 거대한 열주의 숲과 필요이상으로 가까운 사이 간격으로 인해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용하는 공간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뉴욕의 부르클린 다리를 지을 , 당시의 구조기술로는 400m 넘게 스팬하는 다리의 무게를 어떻게 안전하게 지탱 있을 지를 계산할 수가 없어서 사장교와 현수교의 구조를 모두 이용하여 다리를 짓게 된다. 위의 예들은 모두 구조의 과다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잉여적 구조가 없었다면 이들이 만들어낸 우연적 효과들, 다시말해 피라미드의 사용되지 않은 넓은 볼륨이 고고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고대신전의 열주가 곳만의 특별한 공간감을 만들어 내며, 세계유일의 사장 현수 복합구조가 연출해 내는 독특한 구조 (Moire) 없었을 것이다.

3.

구조의 발달은 지도나 도면에 나타나는 포쉐(Poche) 크기를 현저하게 줄였다. 이유는 기술과 재료의 발달로 건물을 지탱하던 재료가 돌에서 콘크리트 그리고 철로 바뀜에 따라 건물을 지탱하기 위한 수직재료의 체적 또한 현저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물의 구조와 내부공간을 구분하던 포쉐의 크기가 점점 줄어서 심지어 Mies Barcelona Pavilion에서는 포쉐가 상징적으로 완전히 도면에서 사라져 버리기 까지 한다. 물론 포쉐가 건축물의 지오메트리를 이해하기 위한 아웃라인을 설정한 것일 실제 구조가 아니라고 반박을 있지만, 드로잉에서 포쉐가 만들어내는 피겨 그라운드의 패턴은 건물의 미적인 완성도나 구축의 체계를 들어내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만큼 건축가에 있어서 포쉐는 설계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자 미적인 장치가 된다. 때문에 현대건축에 있어서 종종 실제 크리티컬한 구조와는 상관없으나 순수한 아름다움과 공간 구축의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잉여의 구조를 삽입하여 포쉐를 만들거나 심지어 정주 가능한 포쉐의 개념까지 가지고 와서 도면 내에서 두께 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특히 구축의 방법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몇몇 서유럽 작가들은 그들의 건축 어법에서 실제 구조와는 상관없는 패턴적 장식적으로써 구조를 반복적으로 덧대기도 한다. 이는 도면에서 포쉐의 역할을 하고 더불어 실제 건물에서는 장식적 입면 패턴을 만들거나 내부 파티션의 역할을 하면서 전체적으로 어느 시점에서 건축물을 바라볼 사실과 은유가 교차하는 강력한 Phenomenal Transparency 만들어낸다. 이렇게 잉여적 포쉐의 사용은 실제의 구축과 연관해서 장식의 사용과 깊게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는 바로크적 장식들의 매너리즘적 사용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고, 장식의 배제를 신봉하던 모던니즘의 형태마저 개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식으로 사용되는 현재의 관점에서도 유효한 디자인 전략이라 하겠다.

4.

건축에서 잉여적 효과는 종종 구조와 패턴 등의 건축적 요소의 반복 통해서 드러나기도 한다. 반복의 효과는 대부분 뉴트럴한 내부 환경을 제공하는데 이용되는데, 대수학적 조합에 기반해 만들어진 이런 공간들은 알베르티가 말하는 클래식 건축의 통합적 구축방식과 대비된다. 건축의 다양한 요소가 단일한 위계적 원리(비례, 지오메트리) 의해 부분에서 전체까지 일관성을 갖도록 구축하는 방식이 건축물을 스스로 완결이 되게 하는 것에 비해서, 요소의 대수학적 반복을 통한 구축은 단일 요소의 균등한 확장으로 종국에는 공간의 물질화를 이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The Great Mosque of Cordoba 기념비적 내부공간은 건물의 동서와 남북 벽에서 시작된 벡터라인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세워진 기둥들과 사이를 잊는 아치들의 반복을 통해 구성이 되었다. 이렇게 페럴렉스한 공간에는 위계가 사라지고 수학적 반복을 통해 세워진 똑같이 생긴 컬럼들 만이 XY 축방향으로 계속해서 존재할 , 내부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수학적 법칙의 기반 위에서 요소의 첨가를 통해 자라나는 이러한 공간은 내재적으로 끝없는 확장의 가능성을 인지시킨다. 결국 독립적 룰과 그것의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공간은 컨텍스트가 없는 중성의 환경을 구축하고 속에 존재하는 객체화된 오브젝트들과 환경간의 관계를 통해 공간의 성격이 규정되는 새로운 차원의 사회정치적 페러다임을 구축하게 한다. Mies Universal Space, Superstudio Continuous Monuments 그리고 Antonio Branzi No Stop City 같은 이미지들은 결국 독립적 시스템의 세계이고 인간은 안에서 프로그램을 스스로 정하거나, 도시와 건축이 사라지고 오직 네트워크로 존재하는 공간에서 뚜렷한 거주지 없이 노마드로 살아 가거나, 혹은 스몰 오브젝트들 간의 관계를 설정하면서 새로운 정주 환경을 구성해 낸다. 이러한 전위적 아이디어가 보여주는 거대 스케일의 추상화된 세계는 예측 가능한 지엽적 스케일 인간들의 생산물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완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잉여적 스페이스 메가폼 빌딩, 인프라 스트럭쳐의 끝없는 확장 같은 조건을 필요로 한다. 이런 잉여적 기반을 통해, 그들은 당시 그들의 도시와 건축이 가졌던 사회 문화적 한계와 불합리를 비판 있었다.

5.

 대표적 초현실주의 건축가인 Frederick Kiesler 그의 건축 케리어의 대부분을 Endless House 쏟아 부었다. 바닥과 벽과 지붕이 끝임 없이 이어진 내부공간은 마치 유기체의 속처럼 흐르듯 이어져 있다. 그래서 바닥은 어느새 의자가 되고 벽이 되고 욕조가 되었다가 다시 침대가 되고 지붕이 된다. 기실 집의 공간은 절마다 건축가에 의해 프로그램이 정해져 있지만 거주자는 이와 별개로 살아 있는 꿈틀거리는 공간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점유할 있다. 효율, 정확성 이란 이름으로 정의할 없는 이러한 공간들은 모두 잉여적 공간의 예이다. Sou Fujimoto 그의 렉쳐“Primitive Space” 통해 애초에 인간이 동굴에 거주할 동굴 공간에는 이름이 없었고 단지 인간이 천연 그대로의 동굴 환경을 상황과 목적에 맞게 상용했을 뿐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건축의 구축방법을 기존의 바닥 지붕 벽의 조합이라는 개념에서 탈피해서. 건축적 요소와 재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적층, 조립, 분리 시키면서 공간을 임의적으로 구성하면 오히려 사용자들이 창의성을 발휘하여 공간을 대안적 방식으로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위의 가지 예처럼 정의되지 않은 건축 공간의 불확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건축가는 사용자의 행동양식을 교모 하게 이용할 있도록 일부러 내부 환경을 잉여적으로 구성한다. 그래서 불확정적 공간에서 건축적 요소들은 구조적으로 필요한 이상으로 공간에 들어서서 공간의 경계와 의미를 흐릿하게 한다. 이유는 건축에서 말하는 불확정성은 결코 카오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느슨하게 통제된 상황을 통해 건축물을 좀더 다양하게 경험하게 하려는 숨은 의도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공간들은 알게 모르게 상황을 통제하고 있고 사용자는 상황을 직관적으로 받아드린다. 인간의 직관에 의해 수용되는 공간을 구성하기 위해서 기존의 구축의 컨벤션은 폐기가 되고 전혀 다른 방식의 구축방법이 도입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만들고자 하는 공간의 특성은 존재하기 때문에, 건축적 요소들이 정확하고 단순한 조건을 만드는 것에 사용되는 대신에, 유동적 조절방식으로써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 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패턴화되어 적용되고 그리고 다른 요소로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마치 지형을 만들듯 다듬어진 이러한 공간은 무엇도 정의 되지 않았지만 대신에 무엇이든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밖에 불확정성을 현상적으로 풀어내서 그의 건축에 적극 도입한 예로는 Junya Ishigami 카나가와 공대 워크샾이나 Stan Allen the Korean-American Museum of Art 계획안 있다. 프로젝트 모두 건축물의 내부 공간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공간을 정확하게 형태적으로 조절을 하는 대신에 흐름을 조절할 있도록 했다. 그래서 Junya 프로젝트에는 무수히 많은 컬럼들이 공간을 느슨하게 구분하고 있고 Stenn Allen 플랜에는 수많은 오브젝트들이 클러스터를 만들어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건축가 모두 미미하고 약한 에이전트들을 공간 내에 배치함으로써 내부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사용자들이 끊임없는 변화를 가져 있게 하는 필드 컨디션을 만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다분히 잉여적이다

6.


To be ad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