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와 건축
(Mathematics in
Architecture)
건축이 현장에서의 임기응변적 축조 방식에서 벗어나 다수의 협업으로 세분화하고 전문화 산업화 하면서, 건축가가 그린 도면이 구축으로 이어지는 의사결정의 과정이 현장에 나선 개인의 감각이 아닌 가장 객관적인
치수와 단위 등의 숫자에 기반을 두는 것이 현대 건축이다. 숫자와 지오메터리가 보여주는 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도면은 실제 건축물의 축조에 도달 하도록 하는 설계도 이기도 하고 동시에 건축가의 순수한 추상적 산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Bormini 의 San carlo Church의 도면과 이를 분석하는 프로세스의 다이어그램을 통해 보면 건축물이 최종의
형태로 발현될 때까지 수학적 계산과 이를 통한 지오메트리의 조합이 건축가가 의사결정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완벽한 인간의 발명 물 이자 동시에 고도의 추상적 산물인 수라는 개념을 통해 건축 이해
하는 것은 현대 건축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을 이해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건축에 수는 Imperial System 과 Metric System 통해 다루어진다. 10진법을
기반으로 한 Metric System은 건축뿐만이 아닌 공학 전반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시스템이고 Imperial Units 은 영미권을 중심으로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시스템이다. 이 두 시스템을 단순히 숫자를 사용하기 위한 단위의 개념에서 벗어나 그 시스템을 자연적 건축에 대입하여
건축의 질서를 이해하는 것은 자연 상태 근저에 위치한 건축의 욕망을 들춰보는 계기가 된다.
열의 열을 곱하는 십진수 패턴을 통한 십진수의 유닛의 개념적 가능성은 16세기 유럽에 소개되었지만 (1586, Simon
Stevin) 이 개념이 Metric system 으로 공인
되어 퍼진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이다. Metric System의 순수함과 보편성은, 3으로 나눌 때 이상한 숫자가 남지 않는 기존 숫자의 유닛 단순함의 상실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기존 시스템을
대치했고 다른 어떤 시스템에도 영향받지 않는 숫자 시스템으로 혁명 이후 새로운 시대의 가치 체계를 대표하는 개념이 되었다. 개념이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1m가
지칭하는 실재의 거리가 있어야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1m는
애초에 북극점에서 파리를 지나 적도에 이르는 자오선을 10의 9승으로
나눈 값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측량기술은 정확하지 못했고 이후 프로토 타입으로서 1m 의 값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정의 되다가 1983년
이후로는 완벽한 진공의 상태에서 빛이 1/299,792,458 초 동안 움직인 거리로 그 기준으로 삼고 있다. 가시적
길잇값을 구하는 데 시간의 개념이 들어 오는 것도 흥미롭지만 애초에 그 값의 기원이 지구를 개념적인 길이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은 건축에서 매우
유 의미하다. 이는 Metric System에서
건축이 지구라는 공간을 어떻게 점유할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어떤
질서를 통해 한정된 공간을 개념적으로 나누고 채워 쓸 것인가에 대한 문제임 드러내기 때문이다.
Charles and Ray Eames 의 The
power of ten, 1977. 을 보면 Metric System 하에서
건축의 인수분해하는 형식적 딜레마를 읽을 수 있는데, 확대와 축소를 통해 다층의 규모에서 무한히
확장 소멸하는 것들 사이의 수수께끼 같은 연결성은 건축이 변증법적 자양 또한 지구에서 시작해서 대륙, 지역, 도시, 빌딩, 방, 그리고 사람에 이루는 다양한 스케일에서 지속적 판단을 기초로 삼아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고민과
닮있다. 예를 들어 도시에서 도로와 건축물을 다루는 방식이나 건축물에서 복도와 거실을 다루는
방식, 방에서 동선과 가구의 배치를 다루는 방식 간에는 유사한 연결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결국 Metric system이 범용하게 적용가능한
유닛의 시스템을 건축가에게 제공함으로써 모든 것이 확대와 축소를 통해 동일차원으로 치환하여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Metric System을 통해 그리드
등의 수학적 체계를 잘 짜내면 건축물이 초기에 계획되고 만들어질 때까지 더욱 정교하면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한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되었고, 고도로 양식화하던 건축물에서도 수학적 질서 찾아내서 이를 카탈로그 화 하여 대량 생산에 이를 수 있게
하는 단서가 되기도 하였다.
Metric System이 주어진 공간을 단일 차원으로 수렴하는 체계라면 Imperial System은 발산 하는 체계이다. 인간의 몸에 그 기원을 둔 Imperial System 은
자연이 신체를 완벽한 비례 체계에 맞추어 만들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체는 간단한 도형에
드러맞고, 인간 신쳬의 치수는 어떤 비례관계를 형성한다. 예컨대
엄지손가락 한마디의 길이(1 inch)를 12배
하면 발의 길이 (1 Feet) 가 되고 이 길이를 3개
이어 붙인 값이 팔의 길이 (1 Yard)와 같아진다는 식이다. 삼의 배수를 바탕으로 한 시스템은 서로를 나누었을 때 나머지가 생기지 않기에 부족한 자원을 알차게
사용하는 방법이 된다. 그래서 카펜터리 에서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애용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무엇인가의 길이를 구할 때 당장 인간의 몸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원초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각 문화권에서
비슷한 측량 방법이 많이 사용됐다. 고대 이집트 Kha 의
묘석에서 발견되었듯 이집트 피라미드를 만들 때는 신체의 각 부분의 길이의 값으로 만들어진 막대를 공사의 기준으로 사용했고, 중세 유럽에서는 백인 남성의 키의 15.3% 정도의
길이를 발의 길이로 보고 실제 무작위의 성인 남성들의 발을 이어 붙인 체 일렬로 세운 뒤 사람들의 숫자를 세어 길잇값을 알아내기도 했다. 동양에서도 역시 인간의 신체의 길이와 동작을 본떠 1자, 1척(尺), 1보, 1장 (丈) 과 같은 길이 단위를 만들어 사용했다, 이후 그
값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했지만 거의 보편적인 길이 단위로 널리 이용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한 칸짜리 집의 크기를 계산하면 8자 X 8자, 약 2.4m X 2.4m가 된다. 이렇게 3, 4 칸씩 이어 붙인 집들을 조합하여 지형에 순응하여 경영위치 시키는 것이 한국 건축 계획의
방법이다. 이는 katsura Imperial
villa 의 평면에서 보이듯 다다미를 규격으로 하여 (지역마다 다다미의
크기는 다르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모듈을 만들고 이 모듈들을 이어가며 증식시켜가면서 계획하는
일본의 방식과는 차이를 가진다.
Metric
System의 보편 이성적 성격과 Imperial System의 자연
확장적 성격은 도시를 만들 때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고대 로마의 군대가 점령지에 도시를
만들 때 원점을 중심으로 Cardo 와 Decumanus 의
서로 직각 하는 위치의 대로로 만들어지는 도로의 체계를 통해 도시를 세우면 그 체계의 경계 안으로 매우 이성적인 격자의 시스템을 유지하다가 동서남북의 4개의 문밖으로 만들어지는 도시의 구조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무형식으로 확장했다. 대표적인 격자형 도시인 뉴욕도 1811년 Commissioner’s Plan이전에는, 네덜란드의
점령 지역이었던 맨해튼 섬의 남부지역의 성벽 안쪽으로 다소 자유로운 도시구조만이 있었을 뿐이다. 19세기
중반까지 자연적으로 형성 되었던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도시구조도 역시 1859년 Ilponso Cerda’s Plan 의 이후로 현재와 같은 크기와 너비의 블록과 도로를 가진
도시구조가 되었다.
숫자가 건축의 레벨에서 범용한 조형의 언어로 치환이 되고 그 반대로도
가능해진 것은 Elements of Geometry, Euclid, 300 BC에 거의 모든
빚을 지고 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은 논리적 언어로 도형과 볼륨을 만드는 방식을 제안하였고, 그의 모든 정의와 가설, 숫자 이론, 비례, 수학적 증거들은 현재의 복잡한 페러메트리시즘까지
이어지는 모든 형태를 만드는 알고리즘의 기반이 되었다. 특히 현대의 건축이 도예가가 흙을 만져
도자기를 만들 듯 현장의 감각으로 완성품까지 만들어 낼 수 없는 산업적 복잡성을 가진 것이기에, 구축에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이 숫자로 치환되어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은 숫자와 지오메트리를 설명하는 다양한 스케일의 그래픽만 있다면 얼마든지 건축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건축가는 현장에서 분리가 되었고 건축이 기술의
영역에서 학문의 영역으로 그 외연을 확장하게 되었다.
건축 도면은 숫자와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텍스트와 같다. 거기에는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컨벤션이 존재하고 동시에 해석과 해설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건축은 숫자를 사용함으로 고도의 추상의 영역에 도달하게 되었다. 도면은 그리는 순간부터 초안이 되고 습작이 되고 완성품이 된다. 평면을
그리는 일은 현실적 문제의 해결임과 동시에 창작자의 정신적 탐구의 대상이 된다. 도면은 공간의
분할과 윤곽선, 지오메트리의 침투, 치수의
반복, 원근법, 공간의 위계, 재료의 변화에 따른 두께의 차이, 이 모든 것으로
인한 형태적 변화의 가능성을 가진 우주를 품게 되었다. 선은 건축가의 창발하는 개념에 따라
그려지지만, 모든 독창적 수공업의 결과와 우연적인 것을 넘어서서 다른 매체를 통해 주관적 표현에서
해방되고, 기하학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는 광대한 객관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최종적 구축의 설계도는 건축가의 손에서 독립하여 수행되는 텍스트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 스스로 유일하고 최종적인 작품이 된다.
도면을
현실화한 결과물로 드러나는 건축의 형태는 표면적으로 관찰 가능한 즉물적인 것임에도 그 구축에 명확히 드러나는 치수와 비례를 통해 가능한 편견 없이
왜곡되지 않은 인식을 기반으로 둘 수 있다. 수를 통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지위를 획득한 건축물은
반대로 자유로운 의식 속에서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 자립적인 존재가 된다. 건축가의
내적 관념의 자유로운 구상이면서도 현실화 과정에서 가시적인 객관성을 유지하는 건축물은 한번 그 존재를 공고히 하면 건축가의 개인적인 산물임이 부정되고
시간 속에 존재하는 역사적인 것으로 그 지위를 가지게 된다.